2024.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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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봤다

더 폴: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봤다

리뷰

2025. 1. 28. 22:47

이 후기에 스포일러 있음!

 

정확히는 디렉터스 컷이었다. 아마 감독판 재개봉인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해 하~나도 아는 정보가 없었다. 영상미가 좋다는 것, 모험 이야기라는 것 정도만. 그런데 딱 이 정도 정보값인 게 낫더라. 영화의 전당에서 봤는데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신기했다. 전혀 대중픽처럼 보이지 않는 포스터를 하고 있어서… 실제 내용도 보고 나니 보통 사람들의 취향 라인은 아닌 것 같던데 실제로는 어떨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처음에는 완벽하게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환상이지만, 후로 갈수록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받다못해 아예 현실의 로이가 겪고 느꼈던 일을 기반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이 영화 전체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청자에 불과했던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에 서서히 참견하고 관여하게 되면서, 복수를 위한 진지한 서사시는 조금씩 아이의 손길이 닿아 살짝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굴곡을 가진 영웅담이 된다. 실시간으로 이야기가 수정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야기'로만 남아 있던 로이의 삶과 감정이 '현실'로 옮겨오는 것은 분명 스스로에게 구원의 과정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과 별개로…이야기를 매개로 아이에게서 현실의 죽음을 얻어내려고 한 로이의 태도가 상당히 돼먹지 못한 사람의 태도라 보면서 참 마음이 안 좋았다. 물론 결과적으로 두 명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구원받았으며, 그 정도로 로이가 구석에 몰려 있는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5살 알렉산드리아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고 느꼈기에……. 어린 나이에 죽음이라는 개념을 배우고 현실에서 이야기로 침범하면서까지 살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다니 너무 이르고 안타깝지 않나…….

 

영화의 영상미는 무척 좋았다. CG 하나 없이 압도적인 자연과 색감을 잡아내서 화면에 담는 것이 징글징글할 정도. 마치 처음 나왔던 흑백 무성영화의 한을 푸는 것처럼 색채와 그림자, 구도를 절묘하게 잡고 여백을 사용한 것이 인상 깊었다. 영화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를 추구한 느낌. 등장인물들의 의상도 강렬한 색에 화려함을 갖추고 있어서, 화면이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로는 공작새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구성이었던 것이 좋았다. 이야기 속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조명이 분리된 것처럼 묘하게 톤이 다른 부분도 좋았다. 감독이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라는 느낌이었다. 다만 제목처럼 직접 '뛰어내리고' 구르고 달리며 대체할 수 없는 영화의 액션을 책임져야 하는 스턴트맨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모든 배경이나 화면 및 등장인물의 연출을 CG 없이 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모순이 아닌가? 인공적 가공 없는 네이티브의 극한을 추구하는 영화가 마찬가지로 인간 행동의 한계를 추구하는 스턴트맨의 이야기를 비극적으로, 혹은 주목해야 할 주제로 그려냈다는 부분에서 큰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영화여서 할 수 있는 내용, 영화여서 시도할 수 있는 영상, 영화이기에 해야 했던 이야기였다. 더 폴은 영화가 담을 수 있는 영상의 한계를 보여주었고, '영화'라는 주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끝을 향해 선형적으로 달려가는 이야기, 오직 정해진 이만이 간섭할 수 있는 일방향적 소통 속에서, 어려움―현실의 한계―을 말하기 위해 어려움을 재현하는 답습. 그리고 환상이 현실을 침범하는 경험은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으니까.

 

얄팍하게 점수 주기: ★★★★ 후기는 불호처럼 읽히긴 하는데 아름답긴 진짜 아름다웠습니다. 1점 깎은 건 5살 아이 마음에 몰입했더니 약간 꼬와져서

재관람 의사: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이랑 화면이 변태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다시 보고 싶음

창작자로서의 코멘트: '현실이 이야기를 바꾼다'와 '이야기가 현실을 바꾼다'를 실감하기 위해 한 번쯤 보면 좋을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아이의 순수함에 구원받는 부분을 조금 더 부각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면 다른 영화가 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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