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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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 봤다

컨택트 봤다

리뷰

2024. 12. 3. 17:59

 

이 후기에 스포일러 있음!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하거나 설득시키기 위해 영화가 취할 수 있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컨택트> (원어:Arrival)는 SF의 '낭만'과 '사랑'에 근접한 방식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비선형적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연결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해도 흘러온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지금을 고르는 것이다. 개봉 자체는 2016년에 이루어진 영화였으나 시기를 잘못 타 (그때의 나는 정신 너무 아픔이였기 때문에……) 제때 보지 못한 영화였는데, 재개봉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외계인들은 위에서 아래로, 굉장히 수직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 마치 선지자처럼 느껴진다. 종교적 색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이 '대화를 시도하고, 일정 시간이 되면 인류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밀어내며, 일부 두려움에 떠는 자에 의해 희생이 발생했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전해야 할 것을 전한다'는 지점에서 그렇다. 우주선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UFO하면 떠오르는 가로가 아닌 세로로 서 있는 것도 그렇다. 이들의 목적이 침공이 아닌 무언가의 교류임은 태도에서부터 자명히 느껴지는 바다. 그들의 언어나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 타 개체를 다루는 방식은 명백히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 있으며 인류의 기준과는 다른 발상으로 접근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 중심 사고로 접근한다. 이것이 지구에 도착해야 했던 이유, 즉 목적이 '침략인가 아닌가'에 집착한다. 종국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은 상대를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비록 그 책임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미국의 적대국이 지긴 했으나, 과연 이 전개야말로 무지에 정복으로 대응했던 서양인 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나온다. 물론 외계인들은 최종적으로 인류에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개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무언가를 알리고 싶어 한다. '3천 년 뒤에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류로서는 까마득히 먼 세월이긴 하나, 비선형적 시간에 살고 있는 이 외계인들에게 시간이란 수평선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수직에서 움직이는 존재이므로 별 의미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도움이 필요하기에 도움을 전하러 왔다는 말은 인류와 외계인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보이게 하나, 사실상 인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수직적인 관계를 띄고 있는 셈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영화의 시작은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다. 시간의 비선형적 전개를 말하기 위해 해당 장치를 사용한 것은 반전의 요소로 다가와 내러티브를 읽었을 때의 쾌감을 준다. 우리가 과거 회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결국 미래의 단편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외계인과의 조우가 과거고 아이와의 시간들이 현재일 수도 있는 법이고, 이것이 '새로운 언어의 배움이 사고방식 및 뇌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언어 상대성 가설에 부합하도록 짜였다는 부분에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언어의 배움은 타 문화와 삶에 대한 배움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이 가설을 알고 이루어지는 장면 모두가 나에게는 가설을 뛰어넘어 정답처럼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런 감상 태도를 주의해야 하는 것과 별개로, 언어를 통해 존재를 알고 나아가 언어 속에 있는 '개념'을 깨우친다는 것은 지성체로서 교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태도가 아닐까? 각각의 언어는 체계와 문화를 보유하고 있기에 이를 알아가며 그들의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체득할 수 있다는 지점은 언어학의 낭만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영어 단어의 라틴어 어원을 찾아볼 때처럼 말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결국 하나의 시간에서 몇 시간 뒤의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선형적 구조를 띄고 있기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비선형적 시간'과 약간 충돌하는 듯한 지점은 아쉽게 다가왔다. 책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어떤 국가에서는 반대로) 진행된다는 지점에서는 선형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원하는 때에 원하는 언어로 이동해 그것을 다시금 곱씹을 수 있으며, 때로는 읽는 차례가 의미 없도록 짜인 도서도 있으므로 비선형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본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비선형적인 느낌을 더 잘 알 수 있을까?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팍 식었다고 느낀 부분이 있으나 굳이 그것까진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영화를 정말 좋게 봤으니까……. 좋은 말만 남기고 싶다. 뭔지 아시죠? 세상이 단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지점, 결국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이 시간을 기꺼이 선택하겠다는 지점,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지점에서 아주 약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의 공통점을 찾아보고도 싶다.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과거와 미래를 뒤집을 수 있어도, 그 시간을 온전히 사랑하고 후회하지 않겠다는 마음. 우리가, 내가 시간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에도 많은 깨달음을 주는 태도다. 보통의 사람은 시간이 앞으로 흘러간다고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지나간 일을 후회하고 앞으로 올 일을 두려워 한다. 그러나 우주적인 차원에서 시간이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존재가 그것을 인식할 때에서야 시간은 흐르는 듯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나의 인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게 중요할테다. 영원히 이어지는 현재를 받아들이고, 그 비선형적임을 소중히 하고 싶다.

 

얄팍하게 점수 주기:  ★★★★★ 논리보다 취향과 감성의 영역으로 5점

재관람 의사: 막차 탔는데 이걸 일찍 봤으면 극장에서 두 번은 더 봤을듯

창작자로서의 코멘트: '비선형적이고 다차원적인 시간'이라는 소재를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열람할 권한이 있다면) 아래 논문도 같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407245

 

DB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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