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식당을 떠나보내며...
기록장
2024. 1. 28. 23:24
오늘 기록을 여는 글
BGM이 좀 아련하네요 하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제겐 약 4년간 (2020년부터니 4년하고도 1개월 더) 좋아했던 식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구도, 갈매기 타고 다니는 도시, 관광객들이 흘린 새우깡 뺏어먹으면서 연명하는 도시에 한 스페인 음식점이 있었는데요
한때 지역구가 다른 도서관을 열심히 다녔던 제게 정말 벼락처럼 다가온 아름답고 소박한 공간이었답니다
저는 감바스가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라는 사실을 이 식당을 다니며 처음 알게 됐어요...
그리고 여기가 아니면 감바스를 시켜먹거나 사먹는 일조차 없게 되었죠...
코로나 불경기와 오르는 땅값 재료 수급의 어려움 기타등등... 요식업을 그만두는데 들 만한 이유라면 수백가지가 있겠지만
아무튼간 지역을 바꾸고서도 한 번씩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곳입니다.
올해 1월까지만 영업하고 이후로는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말 마음이 안 좋아지더군요...
그냥 계속 해주시면 안 될까요 거짓말인 척하고 사실 2050년 1월까지 한다고 해주셔도 되는데...
이런 생떼가 먹힐 리가 없겠지...
이미 월초에도 지인을 데리고 한 번 다녀왔는데 그걸로 끝낼 수 없어서 얼마 전 한 번 더 다녀왔습니다
가족이 따라가긴 했는데 거의 혼자 7만원치 먹고 썼지만 전혀 후회가 없었던 곳...
10만원 나와도 촤하핫 웃으면서 맛있음에 비례한 가격이라고 답잖은 너스레를 떨 수 있었는데...
아 우울하네...
아무튼 최근 식당은 베어꾸와 함께 다니고 있어요
사진은 제대로 못 찍었는데 선물이랑 편지랑 꽃다발을 챙겨서 갔습니다
이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도 많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제가 피아노 전공을 그만둔 뒤로 바깥(이라는 것은 집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 연주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 식당에 배치된 피아노를 보고 양해를 구하고 딱 한 번 연주해본 추억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약간의 관심은 좋아하는 소심한 관종이기 때문에... 같이 갔던 친구 어그로 좀 끌어보고자...
서툴게나마 연주했는데 가게 사장님이 무척 관심을 가져주시고, 곡 제목도 여쭤봐주시고...
연주했던 것을 촬영해 인스타에 올려도 되겠냐고 말씀해주시길래...
솔직히 정말 쪽팔렸지만 (왜냐하면 연주하다 실수했음) 즐거운 식사를 했기에 홍보차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맨 위에 있는 유튜브 곡이 그때 연주했던 곡입니다. 좋아하는 음악이에요.
이날 이후로 사장님은 친구와 이름이 같고,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사실이 있어서 그런지 제 얼굴과 이름을 금방 기억해주시더라고요...
가게를 2번 갔는데 가게 사장님이 내 이름과 얼굴을 다 기억할 때...
다행히 그렇게까지 무섭지 않았습니다... 아직 이때는 한 번 만난 교수가 나를 기억한다는 공포실화를 직접 겪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렇게 사장님과 가까워지고... 여러번 가게에 들리고... 갈 때마다 먹을 수 있는 메뉴 박박 긁어 시켜먹고...
항상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며 제게 서비스도 주셨던 나날들...
직원분들과도 어느정도 라포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이미 처망한 남돌의 명언이 있었죠?
이 가게에 오면 거의 100%의 확률로 무조건 감바스는 하나 시켜놓고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가도 세 사람이 가도 일단 감바스는 에피타이저처럼 입에 집어넣어야 속이 시원합니다.
여기 감바스만큼 통통하고 질 좋은 새우를 쓰는 곳은 없을텐데... 마늘 매콤하게 잘 익혀주지도 않을텐데...
눈물 젖은 바게트를 먹기엔 눈물 나오기도 전에 배가 고파서 입에 다 집어넣습니다.
전 감바스를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간에 기별도 안 가더군요.
같이 온 가족은 채소만 먹어야 해서, 약불로 굽고 간을 조금만 해달라고 부탁드린 비건 채소구이도 처음 먹어봤습니다.
야채는 참 신기하게 구우면 독성이 다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 맛있게 먹는 거 보다 못참고 저도 열심히 주워먹었습니다.
아 진짜 한 번만 더 먹고 싶다... 쓰면서 미친 척하고 내일 또 갈까 생각중
집에서 이렇게 구워먹어도 이 맛 안 난단 말이다~~~~~~~~~~~~
이 음식은 무엇이냐 하면 핀초입니다. 한정 판매하는 에피타이저인데, 이것까지 먹어야 배가 부를 것 같아서 시켰어요.
전 이 식당의 핀초도 참 좋아했습니다... 종류별로 하나씩 다 먹어봤습니다.
이번에는 유럽 절인 햄인 하몬을 올린 핀초를 먹었습니다.
아씨...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맛있게 먹다보니 현타가 왔습니다.
마지막 식사면 좀 음미하고 천천히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전 마치 누가 옆에서 칼 들고 빨리 먹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 들은 사람처럼 음식을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 내 잘못일 거야...
배가 고팠던 것도 있지만 뭔가 빨리 집어넣지 않으면 이 안에 잠든 허기가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후식으로는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절대 혼자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닌데 그냥 먹고 싶어서 시켰습니다.
사실 전에 이 식당에 갔을 때... (얼마나 간 거임) 사장님이 최근 개발중인 메뉴라고 주셨을 때 먹어보고 이건 된다 싶어서 전 오면 무조건 이거 시켜 먹을 거라고 강추드렸는데요.
많이 나갔을런지 모르겠네요... 적어도 전 갈 때마다 시켜먹었습니다.
와인의 쌉싸름한 풍미와 아이스크림이 함께라니... 고급스럽고 좋았어요...
이걸 다 먹으면 계산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천천히 먹었습니다
아이스크림만 거의 20분 넘게 먹은 듯
전 지금까지 좋아하는 식당이라는 게 딱히 없던 사람이었고, 단골 식당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식당이 더 특별했고 소중했는데...
남들이 추천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1순위로 나왔는데...
구질구질...
그래도 마지막에 꽃다발과 선물을 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충격적인 것: 선물 드렸더니 사장님도 선물이라면서 사이다랑 해외 맥주랑 샹그리아청 주심
받고 너무... 아니... 믿을 수 없어서 얼어붙음
난 돈을 쓰고 식사를 제공받는 손님인데도 왜 이렇게 뭔가 더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거지...
자본주의 세계에서 식사 이외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은 사랑이라 불러야 마땅한 거겠죠...
지금 제 냉장고에 사장님이 주신 선물이 소중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식당이 있으면 진짜 소중히 해줘야지... 밥 먹어야 하면 무조건 거기로부터 가야지...
갑자기 사라지지 않게... 아님 사라지더라도 최소한 많이 먹어서 식사 추억을 많이 남기게...
그런 다짐을 하게 해준 좋은 식당이었어요
가끔 이 글 꺼내보면서 추억팔이와 상실의 슬픔을 함께 할 예정입니다
갈매기의 도시에 프린체라는 이름의 문화복합공간 식당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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